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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라는 골드러시, 진짜 청바지는 '변압기'다: 전력망 슈퍼사이클의 도래

성실한 자유 2026.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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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압기

지난 포스팅에서는 AI 데이터센터들이 겪고 있는 '전력 계약 전쟁'에 대해 다뤘습니다. 전기를 미리 확보한 아이렌(IREN) 같은 기업이 왜 프리미엄을 받는지 설명드렸습니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더 넓혀보면, 더 근본적이고 심각한 문제가 보입니다. 바로 전기를 데이터센터까지 끌고 가야 할 '미국의 전력망(Grid)' 자체가 늙고 병들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발전소에서 전기를 많이 만들어도, 고속도로(송전망)가 좁고 톨게이트(변압기)가 막혀 있다면 데이터센터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오늘은 AI 산업의 숨겨진, 그러나 가장 강력한 병목 구간인 '전력기기' 산업이 맞이한 슈퍼사이클에 대해 구조적으로 분석합니다.

 

1. 미국의 혈관은 동맥경화 상태다

미국 에너지부(DOE)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 송전선의 70% 이상이 25년 이상 노후화되었습니다. 변압기의 평균 수명은 40년인데, 현재 설치된 대형 변압기의 상당수가 이미 이 수명을 넘겼거나 임박한 상태입니다.

 

여기에 AI라는 거대한 수요가 들이닥쳤습니다. 기존에는 연간 0.5%씩 완만하게 늘어나던 전력 수요가, 데이터센터 급증으로 인해 특정 지역(버지니아, 텍사스 등)에서는 연간 10~20%씩 폭증하고 있습니다.

 

결국 낡은 전선과 변압기를 전면적으로 교체하지 않으면, 엔비디아의 칩은 그저 비싼 고철 덩어리에 불과하게 됩니다. 이것이 현재 미국 유틸리티 기업들이 사상 최대 규모의 CAPEX(설비투자) 집행을 예고하는 이유입니다.

 

2. 돈이 있어도 못 산다: '리드타임'의 공포

이 시장의 핵심 지표는 수주잔고가 아니라 '리드타임(주문 후 인도까지 걸리는 시간)'입니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대형 전력 변압기(LPT)를 주문하면 1년 내외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업계 리포트에 따르면, 대형 변압기의 리드타임은 평균 120주에서 최대 150주(약 3년)까지 늘어났습니다.

 

지금 당장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주문을 넣어도, 변압기는 2029년에나 도착한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공급 부족 현상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습니다.

  • 숙련공 부족: 변압기 제조는 상당 부분 수작업이 필요한데, 숙련된 기술자가 미국 내에 부족합니다.
  • 원자재 난: 변압기 코어에 들어가는 방향성 전기강판(GOES)의 공급이 제한적입니다.
  • 진입 장벽: 고전압 전력 기기는 안전과 직결되기에 검증된 소수의 기업(이튼, GE버노바, 슈나이더 등)만이 시장을 과점하고 있습니다.

수요는 폭발하는데 공급은 비탄력적인 시장. 경제학적으로 가격 결정권(Pricing Power)이 공급자에게 완전히 넘어간 상태입니다.

 

3. 슈퍼사이클의 승자들: 필연적인 파트너

이러한 구조적 환경 속에서 우리는 '전력 효율'과 '전력 공급'을 담당하는 기업들을 주목해야 합니다. 단순히 테마주가 아니라, 인프라 재구축의 필수불가결한 파트너들입니다.

① 이튼(Eaton, ETN) 전력 관리 솔루션의 글로벌 대장주입니다. 데이터센터 내부에 들어가는 배전반, UPS(무정전 전원 공급장치)부터 변압기까지 모든 라인업을 갖추고 있습니다. 데이터센터가 고밀도화될수록 전력 효율을 관리하는 이튼의 솔루션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됩니다.

② GE 버노바(GE Vernova, GEV) 최근 GE에서 분사한 에너지 전문 기업입니다. 발전(터빈)부터 송배전(Grid)까지 에너지의 전 과정을 담당합니다. 특히 미국의 노후화된 그리드를 현대화하는 대형 프로젝트에서 가장 강력한 수주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③ 허벨(Hubbell, HUBB) 송배전망에 들어가는 각종 커넥터, 절연체 등 유틸리티 부품을 공급합니다. 전력망 현대화 작업이 진행될 때마다 가장 기본적으로 소요되는 부품들을 공급하며,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합니다.

 

4. 결론: 10년의 사이클을 보라

많은 투자자들이 AI라고 하면 반도체 칩만 떠올립니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골드러시 때 가장 확실하게 돈을 번 사람들은 금을 캔 사람이 아니라 청바지와 곡괭이를 판 상인들이었습니다.

지금 AI 시대의 곡괭이는 GPU이고, 청바지는 '전력 인프라'입니다. 변압기와 전선 없이는 AI 혁명도 없습니다.

전력망 교체 주기는 통상 10년 이상 지속되는 장기 사이클입니다. 단기적인 주가 등락보다는, 리드타임이 줄어드는지, 수주잔고(Backlog)가 꺾이는지를 체크하며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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